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는 세월호 사건 후 구원파와 유병언 회장에 대한 집중적인 비난이 언론을 통해서 쏟아지고 있지만 구원파나 유 회장 측에서 제대로 된 반론이나 해명을 제기하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 “유 회장은 메시아도 교주도 아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일 뿐” |
인천지방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는 고창환 사장.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닫았다. |
고 사장은 1986년 (주)세모에 입사해 세모유람선 전무, 세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세모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맡아 일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1997년부터는 관리본부장을, 법정관리가 끝난 2008년부터는 세모의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 이번에 검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에도 ‘이 사건은 유병언의 핵심측근인 피의자가…’라고 적고 있다. 고 사장을 유 회장의 핵심 측근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고 사장은 기독교복음침례회(이하 속칭 ‘구원파’로 표기) 신도(信徒) 2명과 함께 인터뷰 장소에 나왔다. 구회동(의학박사)씨와 이태종(회사원)씨였다. 두 사람은 고 사장과 인터뷰 중 상세한 구원파의 교리(그들은 구원파만의 교리라는 것은 없고 성경 말씀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등에 대한 보충설명이 필요할 때 자신들의 견해를 개진하곤 했다. 의사인 구회동씨는 자신도 간혹 교회에서 설교(그는 자신들은 설교라는 말보다는 성경강해나 강연이라는 말을 쓴다고 했다)를 한다고 했다.
우리의 인터뷰에는 공식 인터뷰 4시간30분, 식사를 겸한 인터뷰 2시간30여분 등 총 7시간여가 소요됐다. 우리는 세모 관계 회사들에 대한 유 회장의 경영관여 등 항간에 떠도는 유 회장 관련 의혹들에 대해 따지듯이 물을 수밖에 없었고, 고 사장 일행은 주로 해명과 반박을 했다.
《月刊朝鮮》이 고 사장과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는 세월호 사건 후 구원파와 유병언 회장에 대한 집중적인 비난이 언론을 통해서 쏟아지고 있지만 구원파나 유 회장 측에서 제대로 된 반론이나 해명을 제기하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10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구원파 신도들의 요즘 생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인터뷰 중 고 사장은 “언론이 우리에게 제대로 된 해명기회를 주기나 했느냐”고 반문했다.
인터뷰 다음 날인 9일 오후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예정돼 있었던 고 사장은 구속을 각오한 눈치였다. 고 사장은 “내일 구속당할 사람이 인터뷰를 한다는 게 그렇고 해서 나오지 않으려고 했다”면서 입을 뗐다. 첫마디는 승객들을 내버려두고 먼저 탈출한 세월호 이준석 선장을 “마구 때려 주고 싶다”는 말이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이준석 선장이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마구 때려 주고 싶어요. 저는 인간으로서 용납이 되질 않아요. 자기가 남아서 끝까지 구조를 해야 마땅한 일 아닙니까.”
- 이준석 선장이 구원파 아닙니까.
“아닙니다. 선장이 구원파가 아니라니까 그 사람 부인이 구원파라는 보도도 나왔는데, 선장도 그 사람 부인도 구원파가 아닙니다.”
- 세월호 승무원 중에 구원파가 없었습니까.
“세월호 승무원 가운데 세칭 구원파는 2명뿐입니다. 그 2명 중 1명은 구조를 하다가 사망했고 한 명은 구조활동을 벌이다가 실신상태에서 구조됐습니다. 그 두 명의 구조활동은 생존자들이 증언하고 있기도 하고요. 사망한 신도는 승객들을 구하다가 자신은 피하지 못하고 사망한 승무원 박지영 양과 비슷한 노력을 한 여성 승무원이었습니다.”
- 왜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까.
“왜냐고요? 그 신도는 숭고한 목숨을 바쳤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구원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떤 취급을 당했겠습니까. 혹시라도 구원파 신도라고 하면 의사자(義死者) 지정을 받지 못할까 봐 말할 수 없었던 겁니다.”
고 사장은 그 사망한 여성 승무원의 이름을 말해 주었지만 “남은 가족들의 피해가 염려된다”면서 공개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확인 결과 그 여성 승무원은 사망자 명단에 있었다.
“1991년 수사때도 유회장에 ‘오대양 아느냐’조차 묻지 않아”
구원파 신도들이 인천지검 앞에서 종교탄압 중지를 요구하는 집회 장면. |
- 세월호와 구원파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겁니까.
이 질문에는 이태종씨가 먼저 답했다.
“저도 묻고 싶은데요. 저는 소위 말하는 구원파로 살아왔는데,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세월호가 있는지도 몰랐고 선장이 누군지도 몰랐어요. 오대양도 본 적이 없고 오대양 사건의 박순자가 누군지도 몰라요. 저는 그냥 교회 다니면서 아이 낳고 살고 애들도 학교 다니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제가 전 국민적으로 죄인이 됐어요. 제 동네에서도 구원파는 죽일 놈이 됐어요. 저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교리를 배웠으면 제가 죄인이죠. 근데 세월호가 저하고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어요. 세월호 승무원이 저랑 같은 교회 다니는 신자였기 때문에 구원파가 죄인이라고 하는 이 논리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지금은 사회적으로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이게 과연 자연적으로 생길 수 있는 논리냐, 누가 고의적으로 만들었느냐 하는 의문이 생기는 거예요.”
이태종씨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고 사장이 말을 이었다.
“91년도에도 같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당시 언론에서 두 달 넘게 구원파와 유병언 회장이 관계된 사건인 것처럼 오대양 사건을 떠들었는데 검찰이 수사를 할 때 유 회장한테는 ‘오대양 압니까’라고 한마디도 물어보질 않았어요. 정확히 말하면 ‘오대양 자수자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당시 제기됐던 타살 여부, 사채의 행방, 정치권 비호, 자수 배후 등의 혐의 중 검찰이 기소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도 구원파는 살인자 집단이라는 낙인이 찍혀 버리고 만 거죠.”
고 사장이 말한 오대양 사건이란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오대양(주)의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 오대양 대표 박순자(朴順子)씨와 가족·종업원 등 신도 32명이 자살한 사건이다. 사건 당시 집단자살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다가 1991년 7월 오대양 종교집단의 신도였던 김도현 등 6명이 경찰에 자수하면서 세모 배후설, 구원파 배후설, 타살설 등의 의혹이 제기됐던 사건이다. 고 사장은 당시 자수자들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검찰수사는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으로 마무리됐다.
- 구원파에서 유병언 회장의 실제 역할은 무엇입니까.
“존경받는 그리스도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 유 회장은 목회자였습니까. 사업가였습니까.
“기업가에 가까웠죠.”
- 주일설교도 했던데 목회자로 볼 수도 있지 않나요.
구회동 박사가 답했다.
“저도 의사지만 가끔 나와서 (설교를) 합니다. 유 회장님이 모임(이들은 교회를 모임으로 표현했다)의 리더는 될 수 있는 거죠.”
- 유 회장도 설교를 하고 그분 아들도 설교를 하고 이 자리에 계신 구회동 박사님도 설교를 하고, 구원파에는 목사가 없습니까.
“없습니다. 저희는 목사 제도가 없어요. 우리가 전에는 다른 교회에서 목사로 호칭한 것은 편의상 한 것이고, 지금은 다 돌아가시고 없습니다. 저희는 평신도 운동인데, 원래는 기독교지만 평신도 모임입니다. 성경을 알면 누구나 참여하는 제도입니다.”
- 그럼 지금의 유 회장은 예술가입니까, 기업가입니까.
“세모가 부도가 난 97년까지는 기업가로 세모 회장이었지만 그 이후로 다 손을 뗀 것이죠,”
유병언 회장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금수원 입구에서 금수원 관계자가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
- 지금은 평신도이면서 예술가인 거네요.
“그렇죠. 지금도 본인이 어디 회장이냐고 묻습니다.”
- 그럼 뭐라고 부릅니까.
“회장이란 직함이 편하잖아요. 전부터 불러 왔으니까.”
- 공식직책은 아무것도 없습니까.
“공식직책이 없어요. 그냥 아해(유 회장의 호)라고 불러요.”
유 회장의 요즘 생각은?
- 유 회장은 구원파 내에서는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이라 했는데, 욕심을 버리라고 강조했다고요?
“아니요. 그건 권신찬(기독교복음침례회의 사실상 창시자이자 유 회장의 장인) 목사님이 강조하신 거고요.”
- 정당한 부(富)를 축적하는 것은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인간의 본성이니까 괜찮은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물욕을 채우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건 당연히 안 되죠.”
- 그런데 97년 이후의 기업인수 활동과 유 회장이 받은 자문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중에 재판을 해야만 그게 나올 것입니다. 제가 설명하고 싶은 것은, 공동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돈이 비자금이든 뭐든 간단한 것은 돈이 어디로 갔고 어디에 쓰였는지가 중요합니다. 근데 저는 (유 회장이) 개인적으로 썼다고 보지 않습니다. 왜 그러느냐? 언론에 우리가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것으로 나오는데, 저희는 지금까지 단 한 평도 샀다가 다시 판 적이 없습니다. 투기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로 오지를 사는데, 왜 그런 곳을 사느냐 하면 우리 공동체를 위해 공기 좋고 오염되지 않은 지역을 고르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겁니다. 지금은 마치 우리가 투기를 한 것처럼 몰아 가지만 지금 유 회장 명의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들 명의로 되어 있는 것이 대구의 집, 영북동의 집 등 부동산 3개, 그거 다 대출 받아 산 것입니다. 이자도 아들이 내고 있습니다.”
- 어쨌든 개인 소유 부동산이 있는 거네요.
“유 회장에게 법적으로는 몰라도 신앙적으로는 절대 개인 것이 없습니다. 유 회장은 사심이 없습니다. 88년도에 냅킨 하나의 가격을 따지면 13원정도일 때였는데 누가 냅킨을 뽑아 파리를 잡으려고 하면 ‘파리 하나 치우는 데 13원이나 써야겠어?’라고 합니다. 자신은 냅킨을 한 번 쓰면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그게 마르면 다시 또 씁니다. 청빈함을 보면 세상에서 알려진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구회동 박사가 거들고 나섰다.
“유 회장은 금수원이라는 대형 창고 한쪽에서 지냈고, 음식도 평상적인 음식을 절제하며 먹고, 본인과 직계가족을 위해 투기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유 회장에게 있어 가족은 구원받은 성도들인 것 같습니다. 일례로 자녀들 명의로 된 땅이 있는데 차남의 결혼식에서 부모가 주는 당부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우리의 땅이 네 명의로 되었다고 함부로 처분해서는 안 된다’ 하며 자녀의 소유권 행사를 경계하는 등 직계자녀에게 늘 철저한 분이셨습니다.”
금수원 내 대형 창고 건물. 유 회장의 측근들은 유 회장이 금수원 내 창고 한 칸에서 사진작업을 해 왔다고 주장했다. |
- 세월호 사건 초기에 유 회장이 사재를 내놓겠다고 했는데, 정말 100억대가 맞습니까.
“그건 자세히 모르겠는데 본인들 명의의 재산을 다 내놓는다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인도 저작권을 갖고 있는 작가다 보니까. 도의적 부분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를 통해서 발표하다 보니 혼선이 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사건을 무마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겁니다.”
- 요즘의 유 회장 생각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직접 듣진 않았지만 엄청 답답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는 구원파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사회는 소유관계로 보는데, 인간이 사는 것이 그게 다가 아닙니다. 저도 제 아파트가 제 앞으로 되어 있지만 집사람도 우리집이라고 하고 애들도 우리집이라고 합니다. 자기 앞으로 되어 있어도 우리 것이라고 하는 데에 증명이 필요 없듯이 구원파의 재산도 그렇습니다. 금수원 그걸 팔면 얼마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게 유 회장 것이라면 엄청난 부자겠죠. 제가 금수원에 자주 가지만 거기를 누가 더 많이 사용하느냐 하면 제가 더 많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유 회장님은 사진 찍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습니다. 4년 동안 300만 장을 찍었다고 합니다. 30초마다 한 장씩 찍어야 한다고 합니다.”
- 유 회장은 잠도 안 자고 사진만 찍습니까.
“제가 말한 것은 수면 시간을 빼고 계산한 겁니다. 그것도 연사로 찍는 것이 아닙니다. 고라니를 찍고 싶으면 고라니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찍는 식인데 사진 찍은 시간은 다 기록되잖아요.”
- 어쨌든 유 회장의 사진이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고가로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게 수준이 높은가요.
이태종씨의 답이다.
“저는 솔직히 달력 하나 16만원짜리를 예의상 샀는데 사진에 문외한입니다. 다른 일반 사진과 비슷한 정도라 생각했고 내 눈엔 평범하게 보이는데, 왜 체코 박물관에서 인터뷰를 올 정도로 유명할까 생각했습니다. 얼핏 듣기로 밀란 크니작 전 체코 국립미술관장은 이 사진을 보고 예술방향이 바뀔 만큼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피카소 그림도 저라면 이해를 못하겠지만 평가한 사람들이 인정하면 그런가 보다 하는 것입니다. 피카소처럼 아해도 자신의 사진 가치를 높여서 팔았다 하면 그걸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베르사유 궁전이나 루브르에서 개인전을 하는 것도 역사상 없지 않았을까 싶고요.”
- 그건 로비를 해서 된 일 아닙니까.
“로비를 한다고 다 됩니까. 16억원을 갖다 주면 작품을 걸 수 있을까요. 거기도 심의위원들이 있습니다. 기부 받는 것은 일종의 관례입니다. 돈을 낸다고 다 해 줍니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그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루브르에서 돈 받고 전시를 해 줬다고 하면 그건 루브르에 모욕입니다.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각 언론사 특파원이 그곳에 파견 나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루브르, 베르사유 등 전시 관계자들을 만나서 확인해 보면 간단한 일 아닙니까. 루브르가 16억 받자고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일을 벌였을까요?”
“유병언이 메시아면 그 교인은 전부 지옥 갈 것”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궁 미술관서 열린 ‘아해 사진전’ 모습. |
- 사진은 그렇다고 치고요. 구원파가 비판의 대상이 된 이유는 기업의 활동에 영향을 미쳐서 기업의 부실을 초래했다는 시각 때문입니다. 청해진해운의 경우도 부실한 기업운영으로 선박도 부실해지고 선원들에 대한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않는 등의 원인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참사를 겪은 세월호 사건 같은 게 발생했다는 지적이 많지 않습니까. 그 정점에 유병언 회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요. 유 회장이 법정관리를 이용, 배후에서 기업을 조종해 사익을 취하느라 기업의 의무를 저버리게 했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까.
“청해진해운의 모든 책임은 회사 대표이사가 지는 것입니다. 누가 관여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유 회장이 경영에 간섭한 것처럼) 그렇게 몰아 가니까 사람들 머리에 심어지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을 생각하면 저도 억장이 무너집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데 선장이 구원파고 구원파는 한번 구원을 받으면 죄를 저질러도 구원을 받는다고 하기 때문에 선장이 죄의식 없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식의 보도에도 제 억장은 무너집니다. 그런 식의 구원파 교리를 오도하는 보도도 정말 아무 죄 없이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구원파 신도들의 가슴을 정말 아프게 만들고 있다는 점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태종씨가 구원파의 구원론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저희가 말하는 구원의 개념은 죄를 짓고 회개를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인데, 성경에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아들을 낳으면 관계는 영원히 유지가 됩니다. 근데 잘못을 하면 두드려 패서라도 바로잡아 주어야 하는 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아닙니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맺어지면 이 관계는 절대 바뀌는 것이 아니고 대신 아들이 잘못하면 고쳐질 때까지 징벌을 하겠지만 영원히 버리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 부자(父子)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구원을 받으면 결코 지옥에 보내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당연하죠. 죄를 지으면 그 사람을 죄 지은 만큼 벌을 받게 하면서도 다시 죄 짓지 않는 사람으로 바꿔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죄 짓는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선한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그걸 받고 나면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더 많이 맞죠. 죄 짓고 싶어하는 마음을 없애겠다는 뜻입니다. 그게 이해가 안 되면 저 사람은 죄를 지어도 천국에 간다는 뜻이구나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전혀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 구원을 해 주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죠.”
- 그럼 이 정도의 교리 해석이나 형식적인 차이 때문에 기존 종단에서는 이단으로 몰아가는 것입니까.
“그렇죠.”
- 구원파 안에서 유 회장은 메시아입니까.
“그런 말은 우리를 저주하는 겁니다. 유병언이 메시아면 그 교인들은 다 지옥에 갈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를 다녀야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다른 교회에도 있습니다. 항상 얘기하는 것입니다.”
- 그럼 유 회장은 구원파의 교주입니까.
“아닙니다.”
- 그럼 실질적으로 구원파를 이끄는 사람은 누굽니까.
“그런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 그럼 평신도들의 모임입니까.
“그러니까 처음부터 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이름을 걸고 시작한 것입니다.”
세모는 누구의 사업체인가
1991년 당시 (주)세모의 여의도 한강유람선 선착장. |
- 80년대 교세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80년대 교인 수가 훨씬 많았죠.”
- 지금은 규모가 어느 정도 됩니까.
“지금은 교적보가 없지만 1년에 한 번 안성 수련원에 교인이 모이는데 1만 명에서 8000명이 옵니다. 휴가 등으로 못 오는 사람이 있을 테니 규모는 그것보다 크겠죠. 어떤 분들은 10만명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유 회장이 교주가 아니라면 세모를 처음 시작할 때는 유 회장 개인 자금으로 한 것입니까.
“아니죠. 유 회장만의 자금이 아니라 주주들이 있었죠. 처음 시작할 때 유 회장은 본인 집을 담보로 자금을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구원파도 헌금을 내죠.
“헌금은 교회에 내는 것이죠.”
- 그럼 세모에다 따로 돈을 내나요.
“아닙니다. 그건 뭐냐면 형제자매들이 일하는 곳에서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 좋아서 하는데, 월급이 적어도 불만은 없어요. 그런데 다른 직장을 다니는 우리 신도들이 ‘세모가 지금 뭘 하는데 자금이 모자란다고 한다더라’고 하면 토요예배를 시작할 때 ‘안에 들어가서 일하는 형제자매도 있는데 우리는 밖에서 좀 더 편하게 살지 않나? 우리가 모여서 사업비를 좀 넣자’ 하는 마음으로 만든 모임이 있었습니다. 자발적인 그런 모임은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 유 회장이 설교를 하면서 ‘돈을 내서 회사를 살려야 천국 간다’는 식의 설교를 했다면서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모는 그럼 누구의 회사입니까. 유병언의 회사입니까. 구원파 교회의 회사입니까.
“저도 초창기 때는 없었는데, 주주는 대부분 교인입니다. 의사이면서 구원파인 변우섭 박사가 대주주입니다. 유 회장보다도 많습니다. 교인 중에 주주가 있지만 교회가 시작한 회사는 아닙니다.”
- 주주가 구원파 신도 중심이지만 개인 사업체라는 뜻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주주들도 그렇고 직원들도 그렇고 하다 보니 탁명환씨가 교회 회사라고 한 것이죠. 하지만 그건 전혀 아닙니다. 사람들이 엉켜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97년부터 10년간 법정관리를 했는데, 그럼 그 회사는 누구의 것이겠습니까. 인천지방법원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 있는 직원들 중 교인이 많다 보니까 교인들은 ‘우리 회사’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평신도 입장에서는 소유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형제자매들이 서로 협력하는 곳이기 때문에 공개념이 있는 것이죠. 근데 법적으로는 아닌 것이죠.”
- 공개념이 있는 회사인데, 유병언이라는 특정 인물에게 그런 거액의 자금이 들어갈 수 있습니까.
“나중에 조사결과가 나오겠지만 유 회장의 역할이 크잖아요. 부도 뒤에도 그분이 아니었으면 회사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정신적인 지주로서 그분의 강력한 리더십이 없었으면 회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실질적 역할이 아니더라도 그 양반이 엄청난 많은 정보를 주거든요.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을 많이 줍니다. 많은 영향이 있는 것이죠. 유 회장님은 세모라는 회사를 만들어 놓고도 출근도 안 하시고 회사에 맡겨 놨던 인감도 법정관리에 들어간 97년에 찾아갔습니다. 30년 만에 찾아간 겁니다. 일반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상당한 부분이 다 교회의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 유 회장한테 흘러간 돈이요?
“아니요. 저도 고문비 얘기는 처음 들었지만 설사 사실일지라도 그분이 한 역할에 비하면 큰 돈이 아닙니다.”
정신적 지주 역할 했다고 자문료 주나?
아해라는 이름으로 사진작가 활동을 하고 있는 유 회장의 촬영 모습. |
- 좀 전에도 언급했지만 유 회장이 정신적 지주로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하는데, 교회 내에서 평신도일 뿐이고 이 회사도 부도난 이후에는 관련이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정신적 지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직책은 없지만 배후에서 실질적으로 지휘를 했다는 것 아닙니까.
“한 가지를 명확히 하고 싶은데요. 교주하고 지도자는 완전히 구분이 됩니다.”
- 좀 전에 교주 질문을 드린 다음에 실질적 지도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일반 교회 쪽에서 목사의 역할을 했다고 하면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우리 교인들은 유 회장이 말하면 가볍게 듣지 않고 다시 생각해 봅니다. 유 회장이 ‘내 생각은 이렇다’고 얘기를 하면 거의 한 80%는 그분이 얘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힘이 있어요. 그런 역할하고 회사 사장이 결재하면서 결정하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 그러니까 자문을 해도 건별로 자문료를 지급하는 것이지 예전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고 돈을 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고문역을 시작한 것은 2년 전부터입니다. 그전에는 없었습니다. 아이원아이 홀딩스를 하고 계시던 대표분이, 회장님도 먹고사는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고문료를 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해서 나온 것입니다.”
- 그럼 유 회장의 장남이나 차남은 무슨 돈으로 회사 주식을 매입한 겁니까.
“자기의 부동산으로 대출 받아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그 부동산은 교회 내에서의 공공재산 아닙니까.
“공공적인 것도 있고 개인 것도 있습니다. 첫째 아들은 조각가이지 않습니까. 어떤 작품은 9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작품을 의뢰한 사람은 구원파와 관련 없는 사람입니다. 예술활동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사석에서 얘기하는 것을 보니까 ‘많이 안 받고 5000만원만 받고 해 줬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싸게 한 것이 5000이야’ 하고 말이죠.”
- 그렇게 많이 버는데, 유 회장을 세모에서 챙겨 줘야 했습니까. 배임 아닙니까.
“고문료 아닙니까? 그렇게 따지면 다른 회사도 다 배임이에요.”
- 일반 기업의 고문은 기업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퇴직 후 일정 기간 예우를 해 주는 것이고, 세모 같은 경우에는 부도가 났잖습니까. 그럼 경영에 대한 책임을 유 회장이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런 직책이 없잖아요. 지금 현재 세모나 관련 회사들의 성장에 기여한 부분이 없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엔 있습니다.”
- 유 회장의 자문이 기업 성장에 도움이 됐다는 겁니까.
“청해진해운 관계 일은 모르기 때문에 저도 궁금합니다. 다른 것을 보면 진주 펄 안료를 만드는 페인트 공장이 있었는데 그걸 청산할 때, 일반적으로는 이 정도에 거래를 성립시키려 했는데 유 회장이 ‘그건 가치에 비해 너무 싸게 파는 것 같다. 더 높게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두 배 이상 비싸게 거래를 한 적이 있어요. 몇 백억이 왔다갔다하는데 그런 것 한 번만 해도 말 한마디에 500억을 더 벌었다면….”
- 그렇다면 유 회장은 무슨 자격으로 그런 자문을 하는 겁니까. 기업에서 요청한 겁니까.
“선을 그어서 얘기하기 힘든데….”
- 정상적인 계약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선을 그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건 아니죠. 고문으로 계약을 한 거죠.”
- 명목상 돈은 그렇게 나갔는데 고문이라는 직책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희하고는 관계가 없어서 정확히 모르지만 컨설팅비 아니면 고문료입니다.”
- 고문이라는 공식 직책도 없다면 자문과 관련한 컨설팅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계약을 체결했습니까.
“그럼요. 계약 없이는 돈이 나갈 수 없죠. 어떻게 나갑니까.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할에 관한 문제는, 예를 들어 삼성에서 반도체를 할 적에 이건희 회장이 전문가가 아닌데도 아이디어를 낸 것 아닙니까. 우리도 그 사람이 교인이든 아니든 특별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물어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물어보죠. 그걸 돈을 갖고 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최근 2년 전부터 회사가 그렇게 해서라도 고문료를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됐던 것으로 알고 있고, 그 고문료가 어디에 쓰였는지도 조사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드러날 거예요. 어떻게 쓰여졌는지를 알면 유 회장이 그 돈으로 뭘 하려고 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냅킨 13원짜리도 아낀다는 등 청빈을 이야기했는데, 자문을 대가로 매달 1000만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는 것은 객관적 기준에서 과하지 않습니까.
“이건 제가 분명히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 양반은 얼마를 달라고 하는 얘기를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않습니다.”
- 달라고 하지 않았어도 자문료로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청빈을 강조한 사람이 돈을 받았다는 것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만약 그 돈을 사적으로 썼다고 하면 실망스럽지 않을까요.
“저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유 회장은 그 통장으로 입금된 돈을 절대 개인적으로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태종씨가 고 사장의 말을 이었다.
“그런 질문이 일반적인 정서라고 생각하고요. 그게 사실이라면 저도 당황스럽잖아요. ‘내가 존경하는 분이 그렇게 많이 받았어?’라는 생각에 결과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결과가 궁금한 것이 있어요. ‘이런 회사도 있었어?’ 하는 교인도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대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유 회장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돈을 공적으로 썼겠구나 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게 불법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의도나 목적에 대해서는 신뢰한다는 그것이 있습니다.”
“세월호 관련 언론 오보 많아”
- 유병언 회장은 어떤 사람입니까.
“창업주시고 개발자는 아니지만 회사에 엄청난 도움을 주신 분이죠. 세모에서 스쿠알렌이 나오면서 회사가 엄청 성장을 했죠.”
- 품성은요.
“자존심이 엄청 셉니다. 정말 불의에는 타협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 마치 유 회장에 대해 파렴치범이니 도덕적 해이니 이런 말들이 나오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 유 회장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저희들하고 연락이 닿지도 않고 저희들도 만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 만나 무슨 얘기를 하겠습니까.”
- 구원파나 유 회장과 관련, 언론이 오보를 하는 게 많다고 하는데 채증하고 있습니까.
“지금 다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오보에 대응할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법적 대응을 말하는 겁니까.
“….”
- 대표적으로 어떤 게 있습니까.
“앞서도 말했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구원받으면 아무 짓이나 해도 된다는 말이 가장 큰 모욕이에요. 우리들만큼 올바르게 살려고 하는 집단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기독교에서는 그게 제일 큰 모욕이에요. 또 ‘아해’는 아이라는 뜻인데도 ‘야훼’를 변형시킨 것이라고 하고, 세월호는 글자 그대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세월(歲月)’인데도 세상을 초월한다는 세월(世越)이라고 하고, 세모는 그냥 도형의 세모꼴을 말하는 건데도 ‘모세’를 뒤집은 것이라고 하고, 많죠. 구원파는 살인집단이니까 아무렇게나 마구 써서 두들겨패도 괜찮다고들 생각하는 모양이죠?”
-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요. 세월호 침몰 사건 후 과거에는 구원파 동료였던 분들이 구원파와 유 회장 일가에 대한 폭로를 계속하고 있는데요.
“A씨와 B씨가 대표적인데 제가 알기로 A씨는 그의 저술과 관련해 기독교계의 대표적 보수연합 단체인 한기총에서 이단 판정을 받았고, B씨는 그의 부인 이름으로 된 우리 구원파 재산을 자기 개인 소유로 만들려고 해 소송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확인 결과 A씨는 기독교 관련 서적에 추천서를 써 주었는데 한기총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는 이 책을 반기독교 음란서적으로 규정하고 저자와 추천자 A씨를 사이비로 규정했다.
김옥숙 여사에게 밉보인 유 회장
지난 1991년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당시의 유 회장. |
- 세월호 사건 후 유 회장이 5공 정권과 아주 가까웠다는 보도가 많았는데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1992년에 조선일보사가 펴낸 《전두환 육성증언》에 당시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유병언을 잘라 버리라고 지시한 내용이 실려 있는 게 보도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아직 5공 비호 어쩌고 하는 걸 보면 언론이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 전두환 대통령의 친동생 전경환(全敬煥)씨와 가까웠던 것은 사실 아닌가요.
“전혀 아니에요. 제가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 유 회장이 발명특허협회 이사를 할 때 당시 명예 이사장이었던 전경환씨와 한 번인가 두 번인가 만난 게 전부라고 합니다. 우리는 오히려 탄압을 당했어요. 1986년 8월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벌여서 32억원을 추징당했어요. 32억 추징을 당한 회사가 바로 전두환 대통령이 방문했던 삼우트레이딩이었는데 당시 매출액이 180억원 정도였습니다. 매출액의 20% 가까이를 추징당한 건데 정권의 비호를 받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 노태우(盧泰愚) 정권 때 ‘오대양 사건’이 알려지면서 구원파가 큰 타격을 입게 되는데, 노태우 정부와도 친하지 않았던 모양이죠.
“저희 교인들 중에는 노태우 정부가 수서비리 사건이 터지자 이를 덮어 버리려고 오대양 사건을 터트렸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그 정부와도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 관계가 나빠질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노태우 대통령이 내무장관이었던 시절에 롯데호텔에서 자연기금 바자회를 하는데 대신 부인 김옥숙(金玉淑) 여사가 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유 회장이 ‘집에서나 내무부장관이지 밖에서도 내무장관이냐’고 하면서 테이프 커팅을 하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내무부 국장들이 당황했죠.”
- 김옥숙 여사를 화나게 만들었군요.
“그게 원인이 된 걸로 저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 동생인 박철언(朴哲彦) 전 의원이 이끌던 월계수회는 왜 가입한 겁니까.
“유 회장님은 월계수회에 가입한 적이 없어요. 그건 언론이 거짓말한 겁니다.”
측근이라는 탤런트 전양자씨와 김혜경씨는 어떤 사람?
- 유 회장이 이번에 사법처리를 피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2014년 5월 10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탤런트 전양자씨가 인천지검에 피조사자 신분으로 출두했다. 전양자씨가 “나는 유병언 회장의 비리와 아무 관련이 없다. 검찰에서 모든 걸 밝히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건 저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 고 사장님과 탤런트 전양자씨 중 누가 더 유 회장의 측근입니까.
“저를 곤혹스럽게 만들려고 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제가 무슨 측근입니까. 유 회장 스타일에 측근은 없어요. 필요하면 얘기를 하는 사이는 있지만….”
- 그럼 전양자씨는 최측근이 맞나요.
“저는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연예인이잖아요, 전양자씨는 91년 오대양 사건 때 곤욕을 치렀잖아요. 저는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은 없지만 연예인이면서 오대양 때 그렇게 당하고도 이탈하지 않고, 신앙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국제영상은 전양자씨 개인이 운영한 겁니까.
“아니에요. 본인이 연예인이다 보니까 영상사업을 하겠다고 자청을 해서 맡았다고 하더군요. 본인이 PD도 많이 아니까 그런 쪽으로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 유 회장과 비서였던 김혜경씨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소문과 보도가 있었는데요.
“저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김혜경씨는 지금도 처녀예요.”
- 김혜경씨는 어떤 사람입니까.
“약사예요. 국제약사 면허도 있습니다. 유람선에서 근무를 했었어요. 그때 유 회장이 가끔 나오시면 차라도 대접한다거나 하긴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제약을 만들고 대표이사가 됐죠. 지금 측근 내지 내연녀라고 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 구원파도 기업활동을 하면서 이득을 본 사람이 있을 텐데, 그곳 사람들의 임금수준이 너무 낮은 건 아닙니까.
이태종씨가 질문을 받아 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희 집사람과 저부터 혜택을 누가 받느냐고 하면, 제 둘째가 다운 증후군으로 태어나서 백혈병을 앓다가 올해 완치 판정을 받았는데요, 처음 뱃속에 있을 때 장애 판정을 받았어요. 기독교이기 때문에 지우지는 못했는데, 애가 완전 돈 덩어리예요. 전 세계의 교회는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교회라고 안 하고 모임이라고 표현해요. 우리 모임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있어요. 건강에 대한 것은 약보다는 몸이 스스로 병을 이겨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요. 그러면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스스로 건강을 찾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나온 것이 알폭시예요. 실제 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포기했어요. 그래서 스쿠알렌하고 알폭시를 사서 먹이면서 완치까지 갔거든요. 누가 뭐래도 이걸 먹고 내 아들이 낫고 가족이 화목하게 살고 있는데, 실제로 그 약도 가격이 비싼데, 판매원들도 그걸 팔면서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어요. 다른 곳하고 비교했을 때 많이 받는 곳도 있습니다. 장사가 잘되면 돈을 잘 받죠, 당연히. 근데 적자가 나는 곳은 조금 받습니다. 일반 사회에서도 돈을 조금 받고 많이 받는 것으로 나뉩니다. 돈을 얼마 받는가로 행복이 결정된다면….”
- 건강기능식품의 효능은 소비자로서 얻는 혜택이고, 교회가 기업을 운영하는데 최종적인 수익은 누가 가져가는가를 묻는 겁니다.
“직원들이죠. 먹고살잖아요.”
교인들을 착취하는 것 아닌가
- 하지만 현재 드러난 기업 지배구조를 보면 기업활동의 최종 수익자는 유병언 일가가 아닌가 싶은데요. 지주회사의 주주이고 배당도 받고, 자문료도 받고, 그 기업 전체가 유 회장 일가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착취를 얘기하고 싶으신 거죠?”
- 네, 일반적으로 말하는 건실한 기업은 아니잖습니까. 신도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봉사로 이뤄진 기업의 활동으로 인해 얻어진 수익을 지도자 일가가 다 갖는 것 아니냐는 것이죠.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그 수익은 해당 회사의 직원과 교회 전체가 가져가는 겁니다. 아마 이런 저임금 문제가 나온 것이 이준석 선장의 월급이 270만원이라고 알려진 것 때문에 불거진 것으로 아는데 270이 아니고 400이 넘습니다.”
- 선장의 월급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기업활동을 전체 교회를 위해서 한다고 했는데, 자금 흐름이 교회 통장이나 계좌를 통해 보이면 상관이 없지만 다들 유씨 장남이나 차남 명의로 나오고 있잖습니까. 이러면 교회를 위해서 쓴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공동체라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전체를 이해하기 힘들어요. 저나 다른 신도들도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저희들 입장에서는 기업활동은 우리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공동체를 이뤄서 잘해야 하는 거라고 봅니다. 주주도 있고 법인도 있다 보니까 서로 돕다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는 있는데, 컨설팅비든 뭐든 간에 돈이 쓰이는 곳은 나올 것이란 말입니다. 그걸 보면 됩니다. 만약 그 질문처럼 돈의 용처가 나오면 실망을 하겠지만요.”
- 종교적인 신념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사사로운 이익을 따지는 것이 아니며 그 결과는 나중에 나올 것이다?
“결론을 내리니까 말씀을 드리는데 저희는 회사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될 때만 컨설팅을 합니다.”
- 공동체를 강조하는데 개인명의로 된 부동산도 구원파 전체의 재산으로 보면 되는 겁니까.
“예를 들어 염곡동 집도 굉장히 호화주택처럼 보이고 그렇게 알려졌지만 게스트 하우스 역할을 많이 해요. 같이 머물기도 하고 식사도 같이 하고, 개인 명의로 되어 있는 집이지만 실제로 활용은 게스트 하우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그럼 애초에 공동체의 명의로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요즘은 조합 형태의 명의로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잘 몰랐을 때는 개인 명의로 했는데 부작용이 많이 생겼어요. 자기 이름으로 돼 있다고 자기 소유라고 우기는 분들이 나타나는 거예요. 요즘 방송에 나와서 구원파를 공격하는 분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것을 챙기고 신뢰를 깨는 사람은 우리 공동체에서 함께할 수 없습니다.”
- 만약 유 회장이 신뢰를 깬다면요.
“교회 자체가 깨질 겁니다.”
유 회장이 은둔하는 까닭은?
- 유 회장은 왜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겁니까.
“사회적으로 매장당했잖아요. 사진을 찍은 것도 그런 영향이 있다고 봐요. 제가 유 회장께서 20시간 가까이 사진을 찍어서 발이 부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나이가 70인데 그런 노력은 가당치 않습니다. 똑같은 장소에서 온도의 변화, 계절의 변화 모두를 잡는 것은 집념이 아니면 안 됩니다.”
- 만약 세모에서 세월호 같은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에는 고 사장께서 책임을 지는 것이죠. 청해진도 김한식 사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죠. 대표이사에게는 무한대의 책임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제가 누구에게 지시를 받았건 아니건 그건 제 책임입니다. 처음에 사고가 났을 때, 선원들이 왜 먼저 나왔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또 사장이 목포에 가다가 쓰러졌다는데 그것도 이해가 안 갑니다. 사장이 누워 버리니까 무정부 상태가 된 것입니다. 저는 제 회사에 한 주도 없지만 제가 오너라는 생각으로 경영을 합니다.”
- 구원파라는 이유로 이번에 해임된 이용욱 전 해경 정보수사국장이 ‘유병언 키즈’라는데, 맞습니까.
“저는 그 사람이 구원파라는 것도 처음 알고 해경인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측근이라고 말하는데, 제가 측근임에도 뉴스 보고 아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구회동 박사가 말을 받았다.
“그래도 어쨌든 그 사람이 논문에 세모 임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썼기 때문에 모든 언론에서 그렇게 보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조차도 뭔가가 맞지 않으면 떠날 수 있는 곳이 구원파이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어느 순간에 휙 돌아설 수 있어요.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일 뿐이에요.”
다시 고 사장이 말을 이었다.
“저, 내일 구속되는데, 솔직한 심정으로 저는 대신 감옥 가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조폭도 아니고 제가 감옥 간다고 해서 누가 책임져 줄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까?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라요. 유병언 회장이 교주였으면 우리 모두가 나서서 그분을 보호했어야죠. 1991년에도 다 빠지고 그분만 감옥 갔잖아요.”
- 본인도 이미 각오하고 있지만 내일 구속될 게 확실한데,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뭘 느꼈습니까.
“제가 볼 때 안타깝지만 이 나라에 더 큰 재난을 방지하기 위해서 고귀한 희생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어떤 재앙이 올지는 아무도 몰라요. 누가 압니까? 우리가 안전한 나라가 아닙니다. 차제에 온 국민이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데에 초석이 된다면 희생자 가족들도 보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병언 회장을 조져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지금 유 회장 일가 비리 조사하는 것과 세월호가 무슨 상관입니까. 제 개인적으로 이 사건은 91년 오대양 사건 폭로가 수서비리를 덮기 위한 것이었듯이 뭔가 다른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날 아침 조간신문에는 유병언 회장이 청해진해운의 1호 사원이었고 유 회장을 회장으로 표시한 비상연락망이 나왔다는 기사가 실렸다. 유 회장이 청해진해운 경영에 개입했다는 물증이 나온 것이다.
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인천지방법원으로 출두하는 고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인지를 물었다.
“저는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그 비상연락망이 작성된 날짜가 세월호 침몰 사고 하루 전인 4월 15일이라면서요? 그게 뭘 의미할까요.”
고 사장은 세월호 침몰 사건을 누군가 의도를 갖고 특정한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의혹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본인이 실제로 유병언 회장 일가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