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 -관리자- / Date : 2015. 9. 1. 15:40 / Category : About US/평신도복음선교회
기독교복음침례회 권신찬 목사님 이야기 - 대구 칠성 교회로
어느 날 경북 노회 목사 수양회가 구룡포에서 열렸다. 목사들만 모인 곳이니 별별 목회의 경험담들이 오갔다. 나는 이상한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 주위로 잘 모였다. 내가 “목사님들, 나는 이제 목회할 자신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니 둘러앉았던 목사 중에 누가 “무슨 소리요? 권 목사는 목회 성공자라고 정평이 나 있는데 권 목사가 못하면 누가 한단 말이요?”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 집 쌀독에 쌀 두 되가 있으면 한 되는 가난한 자에게 주고 한 되는 내가 먹어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또 다른 목사가 “왜 그런 말을 하는거요. 그것은 너무 심한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그렇게 한단 말이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라고 거든다. “그러나 성경에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는데 성경대로 하지 않고 어떻게 설교합니까?” 라고 했다. 나는 목사 수양회에서도 내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대구 칠성교회에서 소식이 왔다. 옮겨올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은근히 에큐메니칼 측 교회로 옮기고 싶던 터라 승낙의사를 밝혔다. 그 교회도 별로 크지는 않았으나 과거에 쟁쟁한 인사들이 다녀간 교회였다. 신후식 목사 같은 유명한 목사가 시무했었고 그 당시에는 남상호 목사가 시무하다가 계성 학교의 교목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군수로 이름을 날리던 안태석 장로도 그 교회에 있었다.
20세 때 가을
한 번 와서 설교해 주면 들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해서 설교하러 갔다. ‘나는 삯군이다’ 라는 이상한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사실 그것은 양심의 소리였다. 삯을 받기 때문에 설교나 목회에 참으로 보람을 느끼고 있지 못하다. 삯을 받기 때문에 설교나 목회에 참으로 보람을 느끼고 있지 못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수 없이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삯군으로서 최선을 다 해 보겠다고 결론을 맺었다. 처음에는 이상한 눈으로 듣고 있더니 그래도 합격이 되어서 칠성교회로 옮겨갔다. 시골 촌뜨기가 발전해서 도시의 한복판에 진출한 셈이다. 또 내심으로 공부를 좀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욕심도 있어서 그리로 옮기자마자 곧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저녁에는 문법강의를 들으러 가고 새벽기도를 일찍 끝내고는 부지런히 회화공부를 다녔다.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오겠다는 목표가 서 있었다.
어느 날 군수였던 안태석 장로에게 내 심경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나는 사실 목사 생활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교회의 현실에서는 참된 목회는 할 수 없습니다. 공부를 더 해서 농촌 청년을 기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 일은 어떤 사람에게도 꿇리지 않는 실력이 있을 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 공부할 목표를 세운 것이다.
권신찬 자서전 "나의 갈 길을 마치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