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파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밝힌다
요약 및 소결론
한국 교회는 탁명환 소장을 비롯해 최삼경, 정동섭 등 이단감별사들이 제시한 구원론과 교회론, 성경론, 종말론을 근거로 하여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이단성을 비방해 왔는데, 이단 감별사들의 주장에 대하여 별다른 조사나 검증 과정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본 교단의 교리를 볼 때 그 이단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총신대 천정웅 교수의 말 (월간 <목회와 신학> 1990년 3월호) 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고, 구원파는 내세우는 교리와 내부적인 교리가 다르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구원파는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그럴 듯한 교리가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들 특유의 이단 교리가 있다” 고 말하지만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교리와 내부 교리를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같은 주장만 되풀이하는 이단감별사들의 주장을 기성 교단 역시 반복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구원파의 교리는 이상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거짓되고 왜곡된 주장을 검증 절차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도 한국 교회 이단 규정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정동섭 씨는 구원파에서 피동적 깨달음에 의한 구원을 강조, 의지적인 회개와 믿음을 배제했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기도와 찬양을 소홀히 한다는 궁색한 비판을 하고 있는데, 본 교단이 기도와 찬양을 소홀히 한 일도 없지만 어떻게 이것이 피동적 깨달음을 강조하는 구원파의 잘못된 구원관의 근거가 될 수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구원파가 복음을 전할 초기에 ‘깨달음’ 이 강조된 부분을 확대 해석하여 구원파를 ‘깨달음파’ , ‘중생파’ 로 몰아가면서, 성경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죄가 용서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회개와 믿음이 수반되는 구원의 역사를 왜곡하여 “구원파의 구원관에는 의지적인 위임(내맡김)으로서 믿음 trust과 의지적으로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 repentance가 빠져 있다” (<정동섭·이영애, 구원파를 왜 이단이라 하는가?> p.70)고 근거 없는 주장을 했다. 기성교단에서는 이에 대한 면밀한 조사도 없이 그의 주장을 그대로 채택해 결국 구원파는 깨달음을 강조하는 차원을 넘어 깨달음만으로 구원을 받는‘구원파’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와 한 구원파 신도가 나눈 교제의 편지를 인용한다.
"메일을 주어서 고맙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구원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 다니던 분들 가운데서도 여러분이 24년 전 구원파로 적을 옮겨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구원, 확신 사죄의 은총 등 중요한 복음교리에 대해 소신 있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국 교회가 구원파를 이단으로 보는 데는 몇 가지 교리에 대해 지나친 강조를 하는데서 야기된 것이 아닌가 봅니다. 그리고 20여 년 전 만해도 기성교인들을 혼란스럽게 하여 교회가 크게 상처를 입는 불상사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자기 교회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지나친 주장은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단 시비를 일으킬 소지가 항상 존재하는 법입니다."
옥한흠 목사도 구원파에 구원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그 부분만 강조된 면을 지적하고 있다. 이단은 다른 복음이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가 있을 수 없으나, 옥한흠 목사는 분명히 구원파의 구원의 역사를 인정하고 있음을 한국 교회는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정동섭 씨는 구원파가 율법폐기론자들이라고 주장한다. 한 번 구원받으면 육신적으로 어떻게 살든 구원에는 영향이 가지 않으니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좋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다른 이단감별사들 역시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구원파가 단회적인 회개만 회개로 인정하고 성화를 위한 반복적인 회개를 부정한다는 등, 한 마디로 구원받은 후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는 정동섭씨의 궤변을 포장만 달리해 비판하고 있다. 본 교단의 설교나 교리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주장으로 본 교단을 공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현재 한기총 이단사이비문제상담소 소장 최삼경 목사는 삼신론자로 이단성 논란이 되었던 인물이다. 그는 구원파의 회개관에 대해 “구원파는 구체적인 죄를 붙잡고 울고불고 고백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 구체적인 죄의 사실이 없이 죄인임을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현대종교> 1985년 5월호, ‘권신찬 박옥수 누구든지 대답하라’, p.90) 이런 식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본 교단이 근본적인 회개가 아니라 일상의 구체적인 사소한 죄를 붙들고 울고불고 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회개의 모습을 비판한 대목을 가지고 마치 구원파가 회개 자체를 부인하는 집단인 양 몰아간 것이다. 또 구원파는 자기네만 구원이 있다고 하며, 구원받은 시간과 날짜를 아느냐는 따위의 질문으로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왜곡하였다.
한국 교회는 구원파를 비판할 때 일반 교회의 모든 제도를 무시한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구원파는 지나치게 형식을 앞세운 기성교회의 예배를 경계하고 있을 뿐이지 기존교회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거듭 밝힌다.
또 구원파의 종말론을 비방할 때 구원파가 급박한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한다는 사실이 늘 따라다닌다. 사실 종말론은 비성경적인 내용이 아니며 성경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눈을 감고도 외우는 사도신경에도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말씀이 있다. 시기와 장소를 모를 뿐이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은 없을 것이다.
심판이 언제 오든 개인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구원을 이루고 나아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구원까지도 이루어질 것을 희망한다면 사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하나님의 심판과 종말을 제대로 전하고자 하는 구원파의 복음을 왜곡하여, 극단적인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전파하면서 급박한 시한부 종말론을 가르친다고 몰아가는 행태를 보여 온 것이다.
이상 기독교복음침례회 소위 구원파에 대해 잘못 인식되고 있는 오해들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본 교단 설교자의 설교를 중심으로 해명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면 구원파에 대한 오해와 이단 규정은 무엇보다 주로 구원파의 구원관을 오해하고 그 내용을 자세히 검토 연구하는 과정 없이 몇몇 이단감별사들의 폭로성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여러 비방과 왜곡에 대해 기독교침례회의 입장을 밝힌 1991년 3월, <목회와 신학>지에 실린 권신찬 목사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구원파의 진실을 알리고자 한다.
기독교복음침례회를 비방하는 말들에 대하여
전술한 신조에서 밝힌 바와 같이 본 교단에서는 성경말씀을 유일한 신앙의 척도이자 지침서로 믿고 있다.(앞부분에서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신조를 밝혔음) 그런데도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 본 교회를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너무나 어처구니없어 그들의 기독교적인 양식을 의심케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단으로 비방하는 대표적인 말 중 하나가 본 교회에서는 구원받으면 속죄를 받아 미래의 죄까지 용서받았으니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냐는 식의 논리로 본 교회를 율법(도덕률) 폐기주의론자로 몰아 초대교회 당시의 영지주의와 결부시키는 것이다. 거듭 밝히지만 구원받은 후에 죄를 지어도 좋다고 가르친 적이 없으며 구원받은 신자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구원받은 것은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 (벧전 3:21) 이므로 구원받은 후에는 오히려 죄에 대해서 더욱 민감해지게 된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영원한 속죄를 받았으니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후에 짓는 죄에 대해서 엄한 징계가 따른다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 (히 6:5-6, 10:26-27) 이 더욱 죄를 경계하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복음침례회가 크리스천의 신앙생활인 성화의 과정을 무시하고 구원받은 후에는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가르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결단코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를 모르거나 고의적으로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또한 영원한 속죄는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구원파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근본 목적이며 성경에 기록된 핵심진리이다. 그런데도 종교연구 운운하는 사람들이 강연회나 방송에서 영원한 속죄는 구원파가 믿는 교리이며 기성 기독교인들이 믿는 속죄관과 다르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으니 하나님을 믿는 한 사람으로 분노마저 느낀다.
그래도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사람들의 엉터리 판단과 주장들이 교계에 받아들여져 본 교회가 이단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본 교단을 왜곡하기 위해서 본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의 사실은 가리고 온갖 거짓으로, 누가 들어도 이단 사이비라고 여길 정도의 거짓 중상 모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면으로 우겨 싼 거짓 비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가 새로운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데 마음과 정성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계실 때 온갖 고초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우리에게 부은바되고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세상의 온갖 박해 속에도 굴하지 않음으로써 그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여 왔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단으로 매도되고 있는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 역시 기독교복음침례회를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보이려 하거나 해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고후 4:3) 는 말씀처럼 성경의 사실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갖기 원하는 선량한 사람들에게 진실을 공개하기 위한 것이다.
이단을 규정하는 근거는 어떤 이름 있는 교단이나 종교 연구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과 성령이 함께하는 성경 말씀이 되어야 한다. 설교에서 십일조를 강조하지 않고, 새벽기도를 안 하는 것이 이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성경 밖에 무엇을 더하여 말하거나 성경의 어느 부분을 삭제하는 등 성경의 기본 강령, 복음을 변경하는 자가 이단이다. (<목회와 신학> 1991년 3월호, 두란노서원, p.68)
출처 : 구원파에 대한 오해와 진실 (기독교복음침례회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