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침] 유병언 전 회장이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설립했다?

Author : -관리자- / Date : 2015. 11. 27. 13:46 / Category : MEDIA/정정보도 모음

1. 무엇이 오보인가? 

'유병언 전 회장이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설립했다.라는 등 에 대해 주장으로 다수 언론사에서 오보를 냈으며, 언론중재위원회나 언론사 당사자간 협의를 통하여 삭제 조치되거나 정정보도되었다. 오보 예시는 다음과 같다.   




 

2. 보도 VS 사실 


유병언 전 회장이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설립했다.

기독교복음침례회가 1981년 설립될 당시 유병언 전 회장은 반대의 뜻이 있어 발기인으로도 참여한 바가 없다. 따라서 유병언 전 회장이 기독교 복음침례회를 설립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3. 관련 기사

<YTN 라디오 2014년 05월 21일>
“검찰 저지한 이유, 오대양 트라우마 때문” -기독교복음침례회 조계웅 간사
http://radio.ytn.co.kr/program/?f=2&id=30066&s_mcd=0263&s_hcd=01




<경향신문 1981년 12월 03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120300329207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12-03&officeId=00032&pageNo=7&printNo=11133&publishType=00020
평신도선교회 창립 

○....평신도가 주축이 돼 선교활동을 펴온 한국평신도 복음선교회가 지난달21일 기독교복음침례회로 교단을 창립했다. 전국각지에서 온 2백48명의 총대가 참석한 이날 창립총회는 邊于燮(변우섭)박사를 총회장으로 서기에 康允浩, 金振浩(김진호) 교수를 각각 선출했다. 



<크리스챤신문 1981년 12월 05일>




<월간지 새길 1991년 9월호>
기독교복음침례회의 형성과 발전(P.55~P.57)

기독교복음침례회 교단 창립 

복음운동이 활발해져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도 구원받는 성도들이 늘어나자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기관 즉 교단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기존의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선교단체로 활동하는 것보다 하나의 평신도 연합교단의 발족이 요청된 것이다. 그리하여 1981년 11월 21일 오후 4시 삼각지 소재 서울교회에서 전국 교회 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교단 이름을 기독교복음침례회로 하는 창립 총회를 갖고 12개 신앙 신조를 채택하였고 제1회 총회장으로 변우섭 박사를 선출했다. 그러나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이름의 교단 발족을 모든 평신도들이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일부 평신도들은 "이미 교단들이 많은데 또 무슨 교단을 만드느냐"고 반대하였고, 평신도 복음운동을 중요시해 온 유병언씨 역시 반대의 뜻을 비쳤다. 교단 창립 이후 유병언씨는 회사일에 전념하였으며 기독교복음침례회 산하 어느 교단에도 나오지 않았고 강사 청빙도 거절하였다. 


다음은 기독교복음침례회 창립 발기문이다. 

◎ 1900여 년 전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기독교 복음의 역사는 예수께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고 말씀하신 대로 소아시아와 로마를 거쳐 독일과 영국 등 유럽을 지나 극동의 한국에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거쳐오는 과정에는 한 곳에서 복음의 순수성이 오래 유지되지 않고 여러 모양으로 변해가면서 기독교라는 형태만 이루어 왔을 뿐 내부 생명은 상실된 채 세속화 되어 버렸습니다. 중세기 당시의 기독교는 서방 교회인 천주교와 동방 교회인 희랍 정교회로 크게 나뉘어 양립해 오다가 중생을 체험한 루터, 칼빈 등에 의하여 종교 개혁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영국의 존 번연, 요한 웨슬레, 죠지 뮬러, 찰스 스펄젼 그리고 독일의 진젠돌프 백작, 미국의 찰스 피니, 디엘 무디 등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믿음의 선배들은 한결같이 복음을 깨닫고 거듭남으로써 교회에 큰 부흥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한국에도 초기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이 땅에 왔을 때에는 장로교나 감리교나 중생의 경험을 거쳐서 신자가 되었던 것이며 그들이 전한 복음 역시 중생의 경험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압박 하에서 기독교는 그 본질인 영혼의 구원, 곧 중생의 교리를 전파하는 것보다는 민족 사상의 중심이 되어 있었고, 그후 민족 해방을 맞아 자유의 물결과 함께 기독교는 수적으로 놀라운 발전과 비대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핵심을 이루는 영혼 구원의 책임, 즉 중생의 경험없는 신자들이 늘어남으로 말미암아 예배당에 나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전부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교파와 교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 간섭 내지는 해방신학 풍조를 낳기도 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중에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그 중에 회의와 갈등 속에서 참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얻는 역사아 20여 년 전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이들은 평신도를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복음운동을 형성해 왔습니다. 모든 종교 개혁이 영적체험인 구원의 역사로 시작한 것과 같이 이 운동 역시 제도나 형식의 개혁이 아니라 영혼의 새로운 삶에서 시작되어 자연히 자라난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이 운동은 어디까지나 평신도 복음운동만 계속되어 왔던 것이나, 현실이 교파적인 이름과 활동을 요구하는 시점에 와 있으며 우리의 활동이 전국과 해외에까지 확장되고 보니 더 이상 현 상태로만 있을 수 없어서 지난 1981. 11. 21. 16시 서울 용산구 한강로 1가 소재 서울교회당에서 전국 총대 248명이 모인 가운데 다음과 같은 신앙신조를 채택하고 기독교복음침례회 창립 총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본회의 유일한 교리는 구약과 신약성경입니다. (교리와 신조 생략) 


1981년 11월 21일 기독교복음침례회 총회장 변우섭 박사




 

 

4. 관련 정정 및 반론 보도

<한겨레 2014년 11월 3일>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2638.html
[기독교복음침례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본 인터넷 신문은 지난 2014년 4월 22일자 홈페이지 사회면에서 <‘억만장자 사진작가’ 아해가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유병언?>이라는 제목으로 “무역업을 하던 유 전 회장은 1979년 세모를 설립했으며 1981년 장인 권신찬(1996년 사망) 목사와 함께 개신교계에서 이단으로 취급되는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창립한 것으로 전해졌다.”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복음침례회에 확인한 결과, 기독교복음침례회 교단은 1981년에 설립됐으며 당시 유병언 전 회장은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해당 기사를 바로잡습니다. 


<뉴시스 2014년 12월 15일>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1210_0013349182&cID=10201&pID=10200
[기독교복음침례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그러나 인천지검 수사에서 기독교복음침례회나 유 전 회장이 오대양사건과 관련 있다거나 5공 정권과의 유착관계는 확인된 바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981년 기독교복음침례회 교단 설립 당시 유 전 회장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한국제약 김혜경 대표는 유병언 전 회장의 비서 출신이나 부인이 아니라고 알려와 이를 바로 잡습니다.






본 게시글은 지난 2014년 4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310여 곳의 언론사들이 보도한 

16,000여 건의 오보에 대한 정정 및 반론 보도 중에 해당 부분을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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