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 -관리자- / Date : 2015. 12. 8. 17:28 / Category : About US/평신도복음선교회
기독교복음침례회 권신찬 목사님과 함께 했던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6) - 이용화
극동 방송과 결별
사실 나는 선교사들과는 그날로 작별을 한 셈이 되었다. 당연히 나는 우리 형제들과 한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 왔다. 한낮인데도 방송국으로 향하지 않고 불광동 권목사님 댁으로 갔다. 차 안에서 유부국장은 여러 가지 선교사들과의 문제를 내게 말해 주었으나 나는 뭐가 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불광동에 도착한 후 그동안의 교계신문 기사내용과 형제들의 설명을 듣고야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그날 선교사들이 공항에 대거 출동(?)하여 나를 맞아 준 것은 내가 혹시나 선교사들 편이 되어 문제 수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도착하자 형제들과 함께 사라졌으니 선교사들은 더 이상 나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이튿날 나는 방송국에 출근을 했다. 묘한 분위기라 선교사들이나 그밖의 직원들과 제대로 귀국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방송국 사무실 게시판에는 종이 쪽지 한 장이 나붙었다. 형제들 11명의 해고 발령장이었다. 권목사님은 물론이고 독일에서 방금 돌아온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부국장은 취직되어 입사한 것이 아니라 경영자로 들어왔던 것이기 때문에 해고발령에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자동적으로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권목사님과 윈첼 국장을 각각 쌍방 대표로 해서 맺었던 방송국 공동운영 계약은 이렇게 일방적으로 파기된 것이다.
일본태평양 방송협회 초정을 받아 세미나 참석하신 권신찬 목사님
그후 몇 달 동안 법정투쟁이 계속되어 해고무효 가처분 결정, 이사진 확보에 있어서 대법원까지의 승소 판결 등 통쾌한 결과들도 있었지만, 사실상 방송을 이용한 복음전도는 그날로 끝난 셈이었다. 하나님은 만 10년간 라디오 방송이라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이땅에 구원의 복음을 전하도록 허락해 주셨고 짧은 기간 안에 이처럼 엄청난 복음의 역사를 일으켜 주셨던 것이다.
후일에 어떤 양심적인 기독교 역사가가 이러한 구원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 놓는다면 복음을 사랑하는 우리의 후세들이 감동적으로 읽게 될 것이다.
기독교복음침례회 고문 이용화 씨가 쓴 회고문
그는 오래 전부터 기독교복음침례회에 몸담아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역사의 증인으로서 오늘까지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