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 -관리자- / Date : 2016. 8. 10. 15:09 / Category : About US/오해와 진실
본 게시글은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질문에 대해
『[카드뉴스] 그날 밤 KBS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Q.
과거 기독교복음침례회는 KBS 방송국 앞에서 공정보도를 요구하며 시위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최근 보도된 이정현 KBS 녹취록 공개에 대해 어떤 입장입니까?
A.
본 교단은 사고가 발생했던 2014년 4월 16일 이후 50일간 세월호 참사 자체의 기사 건수(실선)과 구원파 및 유병언 관련 기사의 건수(점선)를 비교해보았습니다.
출처: 세월호 참사 이후 구원파 관련 언론보도백서 중 1. 세월호 참사 언론보도의 문제점에서 발췌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4월 21일을 기점으로 세월호 참사 자체에 대한 기사보다 구원파 관련 기사가 압도적인 수로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복음침례회는 4월 21일부터 본 교단과 관련된 뉴스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순한 오해로 인식하여 바로 언론대응을 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오해의 폭과 파장이 커지면서 4월 24일 최초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잘못 보도된 내용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본 교단과 유병언 전 회장을 향해 사실 확인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편파적 보도와 악의적 보도가 이어져 4월 28일에는 KBS 방송국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KBS 이정현 녹취록의 공개로 마녀사냥식의 보도가 이뤄질 수 밖에 없었던 인과관계와 배후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4월 21일, 4월 30일 두 차례에 걸쳐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보도 개입을 했다는 것을 녹취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파를 향한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던 4월 22일, 그리고 5월 2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중요한 기록들이 발표된 후였습니다. 4월 20일에는 세월호와 해경 관할 진도관제센터의 교신 내용을 통해 해경의 늑장 대응이 드러났고, 4월 28일에는 해경이 촬영한 세월호 구조 영상을 통해 해경이 승객이 아닌, 선원을 구하는 모습이 공개되었습니다. 4월 30일에는 당시 해경이 해군 잠수 요원을 통제했다는 입장이 보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5월 2일에는 서해지방해양경찰청(서해청)이 선내 인명구조를 전담할 해경 특공대를 헬기에 태워 현장에 급파하도록 지시했으나 해경의 졸속 대응으로 단 한명의 특공대도 구조에 투입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모두 "왜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구조되지 못했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정황적 근거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이전에 언론사의 데스크도 아닌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위축되고, 물타기 되었습니다.
KBS 녹취록이 공개된 후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말합니다. "외압이 아닌 협조요청이었다." 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홍보수석으로서 통상적인 업무였다." 그리고 KBS는 이러한 내용에 대해 단 2건의 보도 밖에 내놓지 않았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 이정현-김시곤 녹취록을 침묵한 것에 대해 비판을 내놓은 KBS 기자는 제주도로 발령이 났습니다.
과연 이것이 타당한 것이라면, 보복성 인사까지 단행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관련 당사자들이 어떤 말들로 둘러댔건 세월호 사고에 구조 실패의 원인을 밝혀낼 수 있는 골든타임에 해경에 대한 비판 보도를 자제하라는 보도 개입이 있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구원파에 대한 보도는 오히려 치솟았습니다. 이것이 의견이 아닌 수치 그대로가 보여주는 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