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 -관리자- / Date : 2014. 6. 2. 13:42 / Category : About US/오해와 진실
역사 속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을 안 기록과 간증
찰스 웨슬리의 신앙 고백
“(1738년) 5월 21일은 영국 국교회의 오순절 주일이었다. 그날은 또한 차알스 웨슬리의 회심일이기도 한다. 그는 ‘나는 그가 나에게 임하시리라는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잠자리에서 일어났다.’라고 기술하였다. (중략) 그 날 브래이는 그에게 시편 32편의 “허물의 사함을 얻는 자는 복이 있도다”는 말씀을 읽어 주었다. 비록 그는 처음에는 ‘나는 격렬한 반감을 느꼈고 믿기를 주저하였다.’라고 말하였지만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은 여전히 나의 악한 영과 싸우셨고 마침내 그는 조금씩 나의 불신앙의 어두움을 몰아내셨다. 나는 마침내 확신에 이른 자신을 발견하였다. 나는 어떻게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를 몰랐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엎드려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
존 뉴톤의 신앙 고백
“신약을 통독하면서 나는 몇몇 구절들로 인해 충격을 받았소. (중략) 특히 탕자의 비유 (눅 15장) 이야기들이었소. 그 탕자가 너무나도 나 자신을 예시해 준다고 나는 생각했소. 아니, 그보다도 탕자를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선하심, 그와 같은 아들을 맞으러 달려 나가는 모습은, 죄인들을 돌이키시는 주님의 선하심의 충분한 설명이 되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소. 나는 계속하여 많은 기도를 드렸소. 주님께서 중재하셔서 나를 구원하시기에 이르렀고, 나는 그가 그보다 더한 것을 해주기를 희망했소. (중략) 우리가 아일랜드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내 자신의 마음속에, 복음의 진리와 내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는 복음의 정확한 적합성에 관하여 만족할 만한 증거를 얻었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고난을 통해 죄를 용서하심에 있어서 그는 자기의 자비뿐만 아니라 자기의 공의까지 선포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소. 그쯤 가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케 하시려고 육체로 나타나셨다’는 지고한 원리를 나는 즐거이 받아들였소.”
찰스 스펄전의 신앙 고백
“목사님은 그날(1849년 12월) 아침 오지 않으셨습니다. 내 생각에 눈 때문에 길이 막혔던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매우 말라 보이는 한 남자가 설교를 하려고 단 위에 섰습니다. 설교자들은 당연히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지만 이 사람은 정말 어수룩해 보였습니다. (중략) 그는 악센트를 주며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중략). 단지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성경은 나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젊은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바라보시오! 당신이 할 일은 바라보며 사는 것뿐입니다!’ 나는 즉시 구원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가 말하는 다른 것들은 알지 못했지만 하나의 생각이 온통 나를 감쌌습니다. 나는 수십 가지 일을 하기를 기다려왔지만 ‘바라보라’는 그 단어를 들었을 때 얼마나 감미로운지. 오! 나는 나의 눈이 빠져나갈 정도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구름은 걷히었습니다. 어둠은 물러가고 나는 태양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일어서서 그들 중 가장 열성적인 이들과도 같이, 그리스도의 소중한 피와 그만을 바라보라는 간단한 진리를 찬송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찰스 피니
“이른 아침에 사무실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사무실에 도착하기 직전에 나의 내면에서 이러한 도전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너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느냐? 너는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기로 약속하지 않았느냐? 너는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너 자신의 의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느냐?’ 바로 이 순간 복음의 구원 문제가 너무나 놀라운 방식으로 내 마음에 펼쳐져 왔다. (중략) 나는 내 자신이 급속히 절망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기도할 수 없어. 내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죽어 있어. 그리고 기도하려 들지를 않아.’ 나는 숲을 떠나기 전에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했던 나 자신을 꾸짖었다. 애를 썼으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었다. 나의 내적 영혼은 완강하게 뒤로 물러서서 내 마음을 떠나 하나님께 가려 하지를 않았다. 나는 이미 때가 늦어서 하나님께서 포기하셨고 소망도 지나가 버렸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중략) 순간 성경의 이 구절이 번갯불처럼 내 마음에 스쳐가는 것 같았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 29:12-13) (중략) 그 때 그분은 나에게 다른 많은 약속들을 주셨는데 신구약성경으로부터, 특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아주 귀한 몇몇 약속들을 주셨다. 그 약속들이 얼마나 귀하고 신실했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그것들을 정확 무오한 진리,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주장으로 하나하나 받아들였다. 그것들은 나의 지성보다는 마음에 부딪혀 오는 것 같았다. (중략) 그렇게 하는 중에 내 마음은 너무나 충만해져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길을 향해 가볍게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회심했는가 하는 의심은 거의 없었고 단지 나무숲 사이를 걸어가면서‘만약 내가 회심했다면 나는 복음을 전하리라.’ 하고 말한 기억이 난다. (중략) 그날은 (1821년) 10월 10일이었고 날씨가 아주 좋았었다.”
D. L. 무디의 신앙 고백
“1855년 4월 21일, 무디가 나가고 있는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님 한분이 무디를 찾아 양화점으로 왔습니다. 무디는 그때, 가게 뒷방에서 주문 받은 물건을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중략) ‘무디, 자네가 우리 교회에 출석한 지 1년이 되었지?’ ‘그렇지요, 1년이죠.’ ‘그러면, 자네는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인 체험이 있는가?’ 킴볼 선생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글쎄요. 언제나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는데요. 나의 어머니도 고향에서 열렬히 교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부터 에베렐 목사님의 설교도 듣고 주일엔 교회에 꼭 다녔지요.’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 무디 자네가 예수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인 적이 있느냐는 거야. 즉 거듭남의 체험이 있었는가 말이야?’ ‘글쎄요. 아마 그런 경험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그런 것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한 것 같아요. 저도 기독교라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깊이 빠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중략) ‘무디, 하나님은 자네를 사랑하고 계시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무디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네.’ (중략) 킴볼 선생은 호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종이 한 장에 정성들여 쓴 것을 무디 앞에 내밀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것은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이었습니다. ‘자, 지금이 바로 그때야! 그렇게 하겠는가, 무디?’
(중략) 마침내 무디와 킴볼 씨는 양화점 뒷방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디는 무릎 사이에다 머리를 깊이 묻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며 죄 사함 받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마침내 2000년 전,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내렸던 성령의 역사가 여기 홀튼 양화점 창고, 가죽을 쌓아 둔 헛간에 강하게 임한 것입니다. (중략) 반 시간 전만 해도 생명이 없는 구두에 관한 대화로 시작된 그들의 만남이 마침내 한 생명에게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구두를 사거나 팔지도
않은 그들은 가장 귀한 것을 사고 판 셈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