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양 사건’, 과연 유병언 혹은 구원파와 어떤 관련있나?

Author : -관리자- / Date : 2014. 5. 20. 11:27 / Category : MEDIA/보도자료

오대양사건은 1987년과 1988년 그리고 1991년 세 번의 수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외부 세력과 관련 없는 집단자살로 결론이 나 유병언 전 회장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 사건입니다. 하지만, 과거 세월호사고 당시 오대양사건과 구원파와 연관지어 많은 오보가 기정 사실인 것처럼 보도되고 현재까지도 드라마에서 언급되며 이슈화되는 등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인해 본 교단의 신도는 많은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연합신문의 기사를 인용하여, 오대양사건과 유병언 전 회장이 무관하다는 사실을 전달드리고자 합니다. 





유병언, 오대양 사건으로 재판 받지 않았다

본보 대법원 판결문 입수, 확인 결과 알려진 것과는 달라




세월호 사건 이후 언론에 회자된 오대양 사건에 대한 보도


[정정보도문] "기독교복음침례회와 오대양" 관련 (아주경제 2014년 11월 3일자) 

- 수사검사가 밝히는 오대양 사건의 진실 “현장 봤다면 타살 의혹이라 말하지 못할 것” (월간조선, 2014년 9월호) 

- 『내가 왜 오대양 사건 背後라는 누명을 쓰고 살아야 합니까? 어금니를 깨물며 억울함을 참습니다』 (월간조선, 1999년 9월호) 

- 유병언 일가 구원파 실체, 27년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과 연루돼 (조선닷컴 4월 23일자).

- 되살아나는 오대양 망령,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막대한 재산형성 과정에 의혹이 일면서 아직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오대양 자금 100여억원의 행방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세계일보 4월 25일자). 

- 1991년 10월 24일 유병언 세모 사장이 오대양 사건과 관련한 첫 공판을 받기 위해 경위들에 둘러싸여 대전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세계일보 4월 25일자 사진설명).

- 구원파는 늘 오대양 사건과 함께 기억된다... 당시 구원파 교주인 유병언 세모 회장과 박씨 사이에 수억원대의 돈거래가 있었음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커졌다 (한겨레).

- 유씨는 오대양 관련 상습사기 혐의로 징역 4년 확정판결을 받고 91년 구속됐다 (쿠키뉴스).

- 유병언 전 세모 회장 ‘오대양 사건’ 당시 신도 돈 가로챈 혐의로 징역 4년 (동아닷컴 4월 23일자).



 이 기사들은 세월호 침몰 사건과 관련하여 전 세모 유병언 회장이 지난 1987년 벌어진 오대양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4년간의 형을 산 것처럼 보도한 기사들이다. 교계에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한마디로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당시 유병언 회장은 오대양 사건에 조사는 받았지만 재판 받지는 않았다. 유 회장은 오대양과는 관계없는 송재화와 관련된 별 건의 ‘상습사기’죄로 처벌 받았다.

 본보가 입수한 유병언 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대법원 92도1751)에는 오대양의 ‘오’자도 나오지 않는다. 당시 검찰은 세 차례에 걸쳐 수사한 결과 오대양 사건은 집단자살로 결론 지었다. 따라서 오대양 사건은 기소도 되지 않았다. 유 회장이 오대양 사건과는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오대양 사건을 ‘세모 유병언’ 혹은 ‘구원파’와 관련시켜 떠올리게 되는 것인가. 이는 국민 모두가 여론을 오도한 언론에 의해 세뇌된 결과이다. 기독교계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피해자인 셈이다.

 이번에도 육하원칙에 의한 지극히 객관적 기사를 써야 할 기자들이 마치 5공 시절에 ‘카더라 방송’처럼 전혀 확인되지 아니한 기사들을 ‘혐의’니 ‘의혹’이니 ‘증언’이니 하는 제목을 붙여 마구 쏟아놓고 있다. 우리사회의 메이저 언론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도 유병언의 이름이 나오자 마자, ‘오대양 사건’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어떤 언론은 구원파의 반사회적 교리가 오대양과 세월호의 참사로 표출되었다고 쓰고 있다. 이런 건 이단연구가들의 비판적 주장일 수는 있어도, 현장을 객관적으로 취재해 보도해야 할 기자의 기사는 아니다.




구원파는 어떤 종파인가?


 소위 ‘구원파’는 1965년 ‘팀선교부’라고 알려진 미국의 복음주의 동맹선교회(The Evangelical Alliance Mission)가 한국에 설립한 국제복음방송국(지금의 극동방송국)에 ‘침례’문제로 예장통합측 경북노회에서 제명된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의 권신찬목사가 방송목사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결성된 단체이다. 극동방송은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 등 공산권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4개 언어로 운영되었다. 당시 팀선교부는 한국어 방송을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대표 권신찬)와 계약을 체결하고 운영했다. 유병언 씨가 부국장이었다.

 권목사의 설교를 들은 청취자들이 극동방송국이 주최한 여름 수양회에 참가한 후 교회로 돌아가 “예수님이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내 죄가 사해졌고 구원 받았다”는 체험을 간증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 중에 서툰 사람들이 자신의 구원의 확신만 앞세워 자기네 교회 담임목사님에게 찾아가 “목사님도 이런 구원의 체험을 하셨습니까?”라는 황당한 질문을 해댄 것이다. 이들이 구원을 강조하고 다닌다 하여 ‘구원파’라는 칭호가 붙었다.

 이로인해 교계에서 파문이 일자 통합측을 비롯한 교단들이 권신찬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교인들로 하여금 권목사의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금하자, 팀선교부도 권목사와의 계약을 파기하여 이들이 따로 모임을 갖게 된 것이 오늘의 구원파 교회가 된 것이다.



구원파에 대한 이단 규정


 구원파에 대한 이단 규정은 제일 먼저 예장통합측에서 이루어졌다. 통합측은 1983년 제68회 총회에서 ‘사이비’로, 1992년 제77회 총회에서는 ‘이단’으로 규정했고, 기성은 1985년 제40회 총회에서 ‘이단사이비집단’으로, 고신은 1991년 제41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합동은 1998년 제83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각기 규정했다. 

 한국교회 주변에 기생하는 이단이나 신종교들이 때때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곤 했으나, 그러나 구원파는 80년대 초 그 공동체 내부에서 벌어진 ‘통용파’ 사건 외에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 일은 없다. 뿐만 아니라, 구원파는 안상홍의 하나님의교회나 이만희의 신천지처럼 기성교회 교인들을 상대로 전도하거나 유혹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왜 구원파가 마치 ‘사교’(邪敎)처럼 비난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우리교계의 소위 이단연구가들이 ‘목사제도’를 부정하는 등 기성교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구원파에 덧칠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덧칠이 된 상태로 구원파를 보기 때문에 사교처럼 보이는 것이다. 평신도선교회로 시작된 구원파가 현재 한국교회에서는 주요 교단들이 이단으로 규정했으므로 ‘이단’임에 틀림없으나 ‘사교’는 아니다.

 구원파의 교리는 기성 개혁주의 교회의 교리와 크게 차이가 없다. 삼위일체 신관과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십자가의 대속, 부활, 승천, 중보, 재림을 믿는다. 그리고 성령론, 인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이 기성 교회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이런 집단에 교주우상주의와 교리적·신학적 이단성이 없는 한 하나의 ‘파라처치’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된 그들의 기업활동은 구원파 교회의 신도들이 중심이 돼 경영하는 것이지, 구원파 교회가 직접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그 집단의 기업활동과 교회활동은 별개로 보는 것이 옳다. 



출처 : 교회연합신문 (www.ecumenical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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