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 -관리자- / Date : 2014. 5. 30. 12:36 / Category : MEDIA/보도자료
구원파에 대한 기성 교회의 이단규정과 구원파측의 반론
권목사,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한다는 말은 거짓말”
세월호 사건 이후 엉뚱하게도 벼락을 맞은 곳은 구원파이다. 마치 구원파의 교리가 잘못되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것인양 호도하는 기사가 수없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과연 세월호 사건의 책임이 구원파에 있는가?
1. 구원파는 정말로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말하나?
권신찬목사는 평소 설교를 통해, “구원파를 이단으로 매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말 중 하나가 구원파에서는 구원을 받으면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고 주장한다는 말”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만일 구원받은 후에는 죄를 지어도 좋다고 가르치는 교파가 있다면 그 교회는 이단임에 틀림없다. 하나님의 큰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 어찌 그 은혜를 저버리고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6:1-2)라고 했다. 구원받은 후 짓는 죄에 따라서 육신이 죽기까지 하는 징계가 있으며(고전 5:1-5, 11:30-32), 고린도교회 신자의 죄에 대해, ‘이런 자는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전 5:5)고 했다. 한 번 죄사함으로 영혼의 구원은 이루어졌으나 육신은 아직 죄성이 있어 죄를 짓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있는 것이다(히12:7-8).
그러나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취하여 한꺼번에 거짓말과 간음과 실인죄를 지었으나 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폐하지 아니한 것과 같이 구원받은 후의 죄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흘린 피로 말미암는 영원한 속죄를 폐할 수는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이다. 어리석은 자들이 이 말을 오해해 죄를 지어도 상관 없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육신을 쳐서 성령의 이끄심에 복종시켜 나가야 한다. 구원받은 후 자신의 육신이 무너지는 시련과 고난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성화(聖化)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후에는 죄를 지어도 상관 없다고 주장한다는 말은 모순된 말이며, 그러한 어리석은 말을 사실로 받아들여 남을 실족케 허거나 매도하는 사람 역시 구원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음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2. 구원파 이단시비의 확산
구원파에 대한 이단시비의 확산은 당시 신흥종교문제연구소(현 국제종교문제연구소)의 탁명환 소장이 ‘세칭 구원파의 정체’라는 단행본을 발간하여 전국교회에 배포하고, 동시에 이를 기독공보와 기독신보 등에 일제히 게제함으로써 전국교회에 확산되었다.
기독공보는 1974년 3월 23일자에 “극동방송국 진로에 의혹”, 3월 30일자에 “극동방속국 문제 전국에 파급”, 5월 18일자에 “극동방송국 사이비성 노출” 등의 기사를 계속 보도하며, 구원파는 기성교회를 구원이 없다고 미혹하는 사이비 유사종교라고 공격했다.
당시 기독공보는 “극동방송국이 저질러온 전국교회 소란과 분열, 교인들의 신앙인권에 준 피해 사건은 몇 년 전부터 대두되었으나 본보에서는 그러한 행위를 시정하고 본래의 복음방송에 충실할 것을 염원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전국에 순회하면서 ‘극동방송국 00지방선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주일 정규집회를 가지면서 집회활동을 해왔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교회관과 구원관에 많은 물의를 일으켜 구원관에 공포증을 주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들과 피해교회 교역자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다... 이탈 교인들의 말을 빌리면 ① 육신으로는 거짓말해도 관계치 않음. ② 자기파 외에는 다 죽은 자들이다. ③ 예수님은 살았을 때 기도하셨지 지금은 죽었으니 기도할 필요성이 없다. ④ 우리는 구원받았으므로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 ⑤ 육신에 대해서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는 등의 기사를 보도했다.
권목사측은 기독공보의 이같은 보도 내용은 모두 왜곡된 허위사실이라며 기독공보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이에 기독공보는 편집국장의 명의로 잘못을 인정하고, 1975년 1월 19일자에 “본인은 기독공보 편집국장으로 1974년 3월부터 약 6개월간 수십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권신찬목사와 그 분이 시무하고 있는 개교회에 대하여 본의 아니게 감정적으로 과장 또는 사실과 다르게 오보하여 정신적, 사회적으로 권신찬목사는 물론 그 분의 소속교회 회중에 대하여 명예를 훼손케 한 책임을 통감하고 지상을 통하여 사과하오며 아울러 몇 가지 해명을 하여 독자들에게 잘못 인식되어 있는 내용을 바로 잡습니다”라는 장문의 사과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그러나 한번 덧칠이 된 구원파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3. 예장통합측 총회의 ‘구원파’ 이단 규정
구원파에 대한 이단 규정은 1982년 통합측 제67회 총회가 조용기·권신찬 이단시비연구대책위원회(위원장 박치순목사)를 구성하고, 이듬해 제68회 총회에서 보고서를 채택함으로써 구원파가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통합측 총회가 권신찬의 구원파를 이단으로 규정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래 통합측 총회 보고서에 대한 권목사의 반박을 비교 참조하라.)
(1) 유아 세례를 성경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인한다. 유아 세레가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난지 8일만에 행한 할례제도를 본따서 신자의 자녀에게 세례주어 선텍받은 백성의 표를 지니게 하는 것이므로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2) 천지 창조 이전에 사단이 존재했다는 주장은 결국 이원론적 사상이다.
(3) 하와를 훗날의 교회의 예표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류의 해석일 뿐 우화적 해석이요 정당한 해석이라 볼 수 없다.
(4) 하나님께서 멸망을 전제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주장 역시 이원론적 사고에서 나온 해석으로서 물질 세계는 악하고 무가치하다는 잘못된 생각의 산물이다.
(5)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교회의 제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나 주일 성수, 새벽기도, 십일조 등은 율법의 소산이라고 반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6) 이미 구원 받은 사람은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연고로 하는 말이다.
4. 통합측 총회 보고서에 대한 권목사의 반박
(1) 유아 세례가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태어난지 8일만에 행한 할례제도를 본딴 것이라면, 유아 세례를 받았다고 해도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도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으나 나중에 요한에게 다시 침례(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눅 2:21).
(2) 사탄은 타락한 천사(루시퍼)이다. 그 천사들이 과연 창조 후에 만들어졌을까? 그렇다면 창세기 2장 15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라는 말씀은 무엇인가? 침범할 의지를 가진 어떤 존재가 없었다면, 무엇 때문에 그것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겠는가? 사탄이 영원전부터 있었다고 우리가 주장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거짓말이다.
(3) 하와의 교회 예표설이 왜 잘못되었는가? 아담은 예수님의 그림자이다. 그리고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다(롬 5:14). 하와는 아담에게서 나온 아담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아담의 배필이다. 교회는 예수님에게서 나온 물과 피로 이루어진 예수님의 신부이다. 따라서 하와가 아담에게서 만들어진 원리는 교회 생성의 그림자요 표상인 것이다.
(4) 멸망을 전제로 한 천지 창조가 성경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비판은 성경의 기록에 맞지 않는다. 고후 4장 18절에는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했고, 계시록 21장 1절에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라고 했으며,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고 했다. 그래서 옛 하늘과 옛 땅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는 영원한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고 성경은 확실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5) 우리는 교회 제도에 대한 무용론을 주장한 일이 전혀 없다. 참으로 구원을 받았으면 성령의 교통으로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진다. 복음은 개인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성령의 전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무교회주의가 아니며 교회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마다 열심히 모이고 있는 것이다.
(6) 또 십자가 무용론을 주장한다고 했다. 그런 말도 안되는 논리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덮어놓고 반대를 위한 반대의 소리이며, 모함이다. 신앙생활에서 십자가를 제하면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비판을 하려면 상대를 좀 알고 비판을 해야 할 것이다.
이상은 구원파에 대한 기성 교회의 비판과 구원파측의 반론을 대비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원파의 이단성은 ‘영혼 구원 보장설’이라고 주장한다. 구원파는 죄를 깨닫고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기 때문에 도덕적 책임감이 없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사실이 그런가!
출처 : 교회연합신문 (www.ecumenicalpre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