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 -관리자- / Date : 2014. 5. 27. 18:04 / Category : About US/오해와 진실
한기총 자료집에 나타난 구원파 교리 비판에 대한 본 교단의 입장
본 교단에서는 2007년 10월에 발간된 <이단 사이비 연구 종합자료 Ⅱ> 를 통해 구원파를 이단으로 정죄한 내용에 대해 짚어보면서 본 교단의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2) 회계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한다
구원받은 자들은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회개란 ‘돌이킨다’는 말로써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한 번 돌이켰기 때문에 더 이상 돌이킬 필요가 없고 이미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사했으므로 회개를 계속한다는 것은 사죄의 확신이 없는 증거이므로 구원받지 못한 지옥의 자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기도문도 외우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다.
이들은 구원을 위한 단회적 회개(히 6:1) 이하 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인 회개를 구별하지 못하며(시51편, 삼하 24:10, 마 6:12, 요일 1:8-9), 죄에 대한 참된 통회와 회개는 믿음에서 온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다 (<제Ⅱ집>, p.24-25)
위 내용은 본 교단을 비방할 때 인용하는 대표적인 대목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육신으로 어떻게 살든 구원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율법폐기론자로 본 교단을 몰아가는 내용이다. 최삼경 목사는 본 교단에 대해“구원파는 구체적인 죄를 붙잡고 울고 불고 고백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 구체적인 죄의 사실이 없이 죄인임을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현대종교> 1985년 5월호, ‘권신찬 박옥수 누구든지 대답하라’, p.90)”라고 비판하고 있다.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근본적인 회개를 전제하지 않고 일상의 구체적인 사소한 죄를 붙들고 울고불고 하는 회개 모습을 비판한 일부 내용을 가지고 마치 구원파가 회개 자체를 부인하는 집단인 것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본 교단에서는 구원을 위한 회개는 한 번이면 족하다고 믿으며, 단번에 믿어지는 믿음을 간과한 채 일상적인 사소한 자범죄에 매달리는 분위기를 경계할 뿐이다.
또 구원을 위한 단회적 회개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 회개를 구별하지 못한다며 본 교단을 비방하고 있지만 결국‘회개’와‘자백’의 차이는 그 용어의 쓰임에 있을 뿐이다. 성경에도 분명히 ‘회개’와 ‘자백’은 구분되어 사용된다. 그러나 본 교단을 비방할 때는 “구원을 위한 단회적 회개”니 “성화를 위한 반복적 회개”니 하는 말을 하면서 ‘회개’의 뜻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도 육신을 가진 나약한 인간인지라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저런 크고 작은 죄를 범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이를 자백함으로 대언자 예수님을 통해 죄를 처리해 갈 수 있다.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본 교단이 주장한다고 말하는 것은‘생명을 얻게 하는 회개’는 분명히 한 번임을 말하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라고 해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니다. 죄에 대한 자백이 있어야 되고, 그것을 회개해야 한다. 완전한 회개는 한 번 필요하고, 구원받은 후 생활에서 묻어 들어오는 죄에 대해서 자백이 필요하다고 한 부분에서 본 교단의 교리를 오해했든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어 책자에서는 “주기도문도 외우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다”라고 단정하고 있는데 이 또한 본 교단의 이단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거짓 증거에 불과하다. 본 교단은 기계적으로 주기도문
을 암송하는 행위를 자제할 뿐, 기도 자체를 부인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밝혀 둔다. 일단 거듭나면 하나님의 계획 아래에서 참 평안을 누리며 살게 되므로, 긴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없어진다는 내용을 왜곡하고 있다. 설교자 유병언 씨도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밝힌 바 있다.
- 요한복음 강해, 1998년 7월 11일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보면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6:7-8)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하고 이어집니다.(마태복음 6장 참조) 말 많이 하고 문장력 좋으면 되는 줄 아는데, 그것 다 폐일언하고 예수님께서 간단한 기도 문구를 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신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이 없고, 그 구절을 바꿔가지고 ‘너희는 이렇게 외우라’하는 줄 알고 착각을 하고 있다 그 말입니다. 주기도문 앞에 너희는 이렇게 외우란 말이 어디 있습니까? 외우는 것이야 다른 성경과 같이 외울 수 있지만, 그 내용을 먼저 음미해야 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그 내용을 먼저 살펴야 되지 않겠습니까.
출처 : 구원파에 대한 오해와 진실 (기독교복음침례회 출판부)